2017년 5월 26일 금요일

김성룡 9단의 ‘알파고 마스터 vs 커제 9단’ 대국 관전평 (1국과 2국)

*아래는 알파고 대국이 열리고 있는 중국 우전 현지에서 보내온 글입니다.


알파고 마스터 vs 커제 9단: 1국 (1국 영상 유튜브 링크)

중국 저장성 우전.
전날까지도 뜨거웠던 하늘에 비가 내렸다. 잘 정비된 관광지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곳. 입장료(120위안)의 부담 때문인지 관광객은 많지 않고 적당해 수향마을의 풍경을 즐기기엔 그만이다.
알파고와 커제가 대결하는 우전 인터넷 컨벤션 센터는 관광지 안에 있다. 커제는 알파고의 대리인이라 불리는 아자황 박사와 돌 가리기를 했다. 결과는 커제의 흑. 머리 속에 흑과 백이 선택되었을 때 미리 준비한 수들이 무엇일까. 그렇게 시작된 1국. 생각시간은 이세돌 때와 달리 1시간 늘어난 각자3시간. 우선 이점은 지난해 보다 인간이 유리하다. 알파고의 CPU는 200대. 이것 역시 지난해보다 숫자가 줄었다. 객관적인 면에서는 커제도 해 볼만 하다. 하지만 인공지능 1년2개월을 인간의 시간과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이 커제에겐 너무 불리하다. 커제도 이 점을 가장 두려워하지 않을까.

커제의 3번째 수는 (3.3) 85년 전 일본 본인방 슈사이 명인을 상대로 어린 우칭위엔이 선보여 화제가 되었던 수다.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는 3.3을 두는 것을 금기시 되었다. 왜 이 시점에서 커제는 3.3을 비장의 한 수로 들고 나왔을까. 커제에게 꼭 물어보고 싶다.

백6 알파고는 소목 두칸 높은 굳힘을 두었다. 흑을 잡은 알파고가 두던 수. 백으로는 처음 두었다. 흑7 커제는 알파고의 3.3 침입을 역으로 두었다. 그것은 아주 빠른 템포에 처음엔 정말 놀랐는데 자주 보니 많이 보던 수 느낌 정도다. 백10이 재미있다. 알파고는 자기가 새로운 수를 보여주고 그 해답도 자기가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이 수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결과는 알파고의 성공. 백22까지 흑은 축에 걸렸다. 흑3의 3.3 위치가 지금은 좋은 자리가 아니다. 바둑을 전체적으로 보는 느낌이 든다. 하긴 이 정도로 감탄해야 한다면 알파고가 아니다. 그래 이 정도까지는 인간의 영역이다.

초반 부분을 넘어 중반으로 진입했다. 이상한 점은 알파고가 평균 1분에 한 수씩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 이상하다. 그래서인가 기계가 두는 느낌이 사라졌다. 이럴 수가. 알파고2.0을 단순히 바둑의 기술 진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된 것 같다. 백 세모(50번째 수)가 두어진 곳을 보자. 굳이 표현하자면 응수타진인데 이 수는 왜 지금일까 하는 의문 부호가 생길 수밖에 없는 수다. 인간의 눈에는 이런 수가 보이지 않는다. 다음의 한 수가 쉽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묘하게 실마리를 찾는다. 알파고의 백50번째 수는 이세돌 때 보여 준 5선 어깨 짚는 수 만큼이나 파격적이다.

백 84번째 수는 (백1)로 침입한 수다. 기존의 이론과 완전히 다른 침입이다. 인간은 우선 흑8의 곳을 생각한다. 한 칸 차이지만 피아노 건반 하나 보다 훨씬 느낌이 다르다. 이후 3-13까지 집으로 많은 득을 본 것이 알파고가 유리해진 순간이다. 백15,17로 이어진 진행은 흑 모양만 줄이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수순이다.

바둑은 이세돌 5국보다 더 많은 진행(289수 종국)으로 끝났다. 커제도 13분을 남겼고 알파고는 절반만 사용했다. 굳이 나누어보면 이세돌과 1분에 한 수 두던 걸, 1.6수를 두었다.

이세돌 때의 착점 시간이 자유롭다보니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이 두는 모습을 연출했고 너무 매끄러운 진행을 하다 보니 바둑의 매력이라는 패싸움은 생길 기회조차 없었다. 알파고 마스터 버전은 기계의 냄새를 빼고 인간의 냄새로 전환된 착각이 들게 한다. 바둑 내용은 인간의 바둑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잘 둔다.

결과는 1집반이어서 나름 미세한 승부였지만 커제는 시간을 다 쓰기도 전에 패색이 짙어져 아쉬움을 더했다. 이세돌 때의 깜짝 놀랄만한 수도 별로 없고 전반적으로 실력차이를 실감했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완패를 당할 때 느끼는 무기력함이 더했다.

오늘 제1대국 총평을 한다면, '깔끔해졌다’, ‘군더더기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이 흘렀다’이다. 또한 지난해에 비해서 알파고가 더 안정적으로 변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당연한 수도 장고 끝에 두는 모습을 보였는데 올해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등 반응 속도가 훨씬 빨라진 것 같다. 작년에는 알파고가 바둑 두는 것을 보면 ‘좀 지루하다’라는 느낌이었는데, 올해는 일률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빨리 둘 때는 빨리 두고 느리게 둘 때는 느리게 두는 등 아주 다이나믹하게 둬서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알파고가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면 인간의 능력도 향상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바둑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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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마스터 vs 커제 9단: 2국 (2국 영상 유튜브 링크)
(*본 내용은 한국일보 5월 25일자 기사에 실린 내용입니다.)

중국시간 오후 1시 37분, 커제는 자신의 생각시간 47분이 남아 있는 시점에 더 둘 곳이 없었다. 알파고는 50분을 약간 넘겼을 뿐인데. 그만큼 격차는 너무 많이 벌어져 있었고 본인이 항상 이기는 패턴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동료 탕웨이싱 9단이 복기로 위로해주지만 울음을 애써 참을 뿐이다.

처음 흑1,3번째 수를 1국 때 커제가 둔 것을 그대로 사용한 알파고. 커제는 의외라는 듯 살짝웃었다. 이후 바둑은 일사천리. 커제를 완전히 놀라게 한 수가 등장한다.

초반 (23-25) 알파고의 예술적인 한 수
흑1의 응수타진은 사석작전을 하겠다는 뜻. 하지만 우리가 아는 사석작전과는 달랐다. 1국 때 보여 준 백84수의 한 칸 차이와는 또 다른 흑3의 한 칸. 예술적인 느낌마저 든다. 확실히 이 수를 당한 커제는 흔들렸고 작전을 바꿨다. 복잡한 난전으로...

중반 (56-58) 커제 흔들다.
바둑은 복잡해졌다. 커제의 의도에 순순히 복잡한 바둑을 따라 두는 알파고를 보며 과연 1국의 알파고 버전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여하튼 백1,3 커제 바둑의 진수인 행마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젠 디테일이 승부가 되었다. 이세돌은 인공지능의 약점이 디테일 한 부분일지 모른다 라고 했다.

종반 (119) 처음봤다. 알파고 신의 한수.
흑119 말이 필요 없는 한 수다. 이 한방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그동안 예측하기 힘든 수를 많이 봤지만 이 수는 인간도 시간이 많았다면 봤을 것이다. 우린 이런 수를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묘수’다.

커제는 초반 알파고의 25번째 수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노선을 복잡하게 만들어 이세돌의 4국 신의한수를 노렸다. 만약 커제가 오늘119의 수를 두었다면 커제도 신의한수 흑119가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1국은 알파고의 아름다운 바둑을 보여 준 하루라면 2국은 압도적인 바둑을 보여준 하루로 기록될 것 같다.

                      



작성자 : 김성룡 9단 (2016년 알파고 vs 이세돌 대국 공식 해설가) https://s7.postimg.org/7s00eg1ln/image.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