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3개의 돌이 착수된 순간 평범한 바둑 대국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은 명확했습니다.


중국의 바둑 장인이자 세계 최강의 바둑 기사인 커제 9단은 특유의 스타일을 버리고 초반 3·3점을 파고드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매우 드문 경기 운영 방식으로, 초반에 코너 영역을 빠르게 장악하기 위한 접근법입니다. 이는 바둑 기사들이 자주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지만 알파고가 즐겨 두는 방식입니다. 커제 9단은 알파고의 방식으로 알파고와 상대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커제 9단의 첫번째 흑돌 착수는 이 아름답고 오래된 게임의 진실을 탐색하고자 중국 우전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 개막전에 걸맞는 한수였습니다. 지난 5일 동안 최고의 경기들을 직접 볼 수 있어서 딥마인드에 있어서 정말 큰 영광이었습니다.




딥마인드는 언제나 AI가 우리 사회에 새로운 지식을 가져다주고 이에 따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알파고는 실제로 이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알파고는 경쟁 상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둑 기사들에게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지난 2016년 서울에서 전설의 바둑 기사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보여준 창의적인 수들은 바둑계에 완전히 새로운 지식을 가져다 주었고, 올해 초 Magister(Master)라는 닉네임 하에 진행된 비공식 온라인 대국은 커제 9단을 포함한 많은 바둑 기사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번주 포럼에서 열린 세계 최고의 기사와 알파고가 한 팀이 되어 경기를 펼치는 페어 대국 역시 AI 시스템을 활용해 복잡한 분야에서 새로운 통찰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의 잠재력을 보여줬습니다.


이번주 바둑의 고향인 중국에서 세계 최고의 기사들과 함께 한 대국들은 바둑 경기 참가 프로그램으로서 알파고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이었습니다. 따라서 바둑의 미래 서밋은 알파고가 참가하는 마지막 경기가 될 것입니다.


알파고 연구진은 다음 도전에 열정을 쏟을 것입니다. 새로운 치료법을 찾거나, 에너지 소비를 현저히 줄이거나, 새로운 혁신적인 소재를 발명하는 등 과학자들이 세계의 가장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돕기 위해 고급 범용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도전을 하고자 합니다. AI 시스템이 이러한 분야에서도 상당한 양의 새로운 지식과 전략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는 몹시 중대한 발견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 지 매우 기대됩니다. 


앞으로 알파고가 바둑 대국을 하는 일은 없지만 지난 몇 년간 큰 격려와 동기부여를 주신 바둑계와 협력을 이어갈 것입니다. 올해 안에 발행될 최종 학술 논문을 통해 알파고 알고리즘의 효율 개선 사항과 더 큰 문제들에 적용될 수 있는 잠재력에 대해 소개할 것입니다. 알파고의 첫번째 논문 때와 같이 개발자들이 그 바통을 이어 받아 더 강력한 바둑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딥마인드는 바둑 교육툴 역시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이번주 가장 많이 받은 요청이기도 합니다. 이 도구는 바둑 수에 대한 알파고의 분석을 알려줘 알파고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모든 바둑 기사와 바둑 팬이 알파고를 통해 대국을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영광스럽게도 커제 9단이 첫 협력자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커제 9단은 딥마인드와 협력해 알파고와의 대국에 대한 연구를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이 대국들에 대한 커제 9단의 통찰력에 대해 들어보고, 또 알파고의 분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마지막으로 바둑의 미래 서밋 폐회를 맞아 전 세계 바둑 팬을 위한 특별한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딥마인드는 50개의 알파고 자체 대국을 공개합니다.  이세돌 9단과의 대국 이후 알파고는 스스로의 선생님이 되어 수백만 건의 훈련 게임을 통해 지속적으로 실력을 향상시켜 왔습니다. 이 대국들은 새롭고 흥미로운 아이디어 및 전략을 담고 있을 것입니다. 


딥마인드는 이번주 우전에서 최고의 바둑 기사들에게 이 대국들을 선보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계 챔피언 스웨 9단은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대국”이라며, “상상하던 저 먼 미래의 대국 같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세계 챔피언 구리 9단은 “알파고 대 알파고 대국은 정말 놀랍다"며, “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바둑 기사들이 이번에 공개되는 대국 기보를 확인하고 새로운 수를 시도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공개하는 10개의 대국 기보는 이곳에서 다운 받으실 수 있으며 매일 10개씩 총 50개의 대국 기보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바둑계가 알파고에 보여주신 관심, 그리고 프로 및 아마추어 바둑 기사분들께서 알파고의 통찰력을 받아들여 주신 것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딥마인드는 이제 열정과 통찰력을 새로운 분야에 적용시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학적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알파고의 이야기가 더 큰 이야기의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성자: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CEO 겸 창업자 & 데이비드 실버, 딥마인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 겸 알파고 팀 리드

*아래는 알파고 대국이 열리고 있는 중국 우전 현지에서 보내온 글입니다.


알파고 마스터 vs 커제 9단: 1국 (1국 영상 유튜브 링크)

중국 저장성 우전.
전날까지도 뜨거웠던 하늘에 비가 내렸다. 잘 정비된 관광지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곳. 입장료(120위안)의 부담 때문인지 관광객은 많지 않고 적당해 수향마을의 풍경을 즐기기엔 그만이다.
*아래는 알파고 대국이 열리고 있는 중국 우전 현지에서 보내온 글입니다.


알파고 마스터 vs 커제 9단: 1국 (1국 영상 유튜브 링크)

중국 저장성 우전.
전날까지도 뜨거웠던 하늘에 비가 내렸다. 잘 정비된 관광지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곳. 입장료(120위안)의 부담 때문인지 관광객은 많지 않고 적당해 수향마을의 풍경을 즐기기엔 그만이다.
알파고와 커제가 대결하는 우전 인터넷 컨벤션 센터는 관광지 안에 있다. 커제는 알파고의 대리인이라 불리는 아자황 박사와 돌 가리기를 했다. 결과는 커제의 흑. 머리 속에 흑과 백이 선택되었을 때 미리 준비한 수들이 무엇일까. 그렇게 시작된 1국. 생각시간은 이세돌 때와 달리 1시간 늘어난 각자3시간. 우선 이점은 지난해 보다 인간이 유리하다. 알파고의 CPU는 200대. 이것 역시 지난해보다 숫자가 줄었다. 객관적인 면에서는 커제도 해 볼만 하다. 하지만 인공지능 1년2개월을 인간의 시간과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이 커제에겐 너무 불리하다. 커제도 이 점을 가장 두려워하지 않을까.

커제의 3번째 수는 (3.3) 85년 전 일본 본인방 슈사이 명인을 상대로 어린 우칭위엔이 선보여 화제가 되었던 수다.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는 3.3을 두는 것을 금기시 되었다. 왜 이 시점에서 커제는 3.3을 비장의 한 수로 들고 나왔을까. 커제에게 꼭 물어보고 싶다.

백6 알파고는 소목 두칸 높은 굳힘을 두었다. 흑을 잡은 알파고가 두던 수. 백으로는 처음 두었다. 흑7 커제는 알파고의 3.3 침입을 역으로 두었다. 그것은 아주 빠른 템포에 처음엔 정말 놀랐는데 자주 보니 많이 보던 수 느낌 정도다. 백10이 재미있다. 알파고는 자기가 새로운 수를 보여주고 그 해답도 자기가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이 수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결과는 알파고의 성공. 백22까지 흑은 축에 걸렸다. 흑3의 3.3 위치가 지금은 좋은 자리가 아니다. 바둑을 전체적으로 보는 느낌이 든다. 하긴 이 정도로 감탄해야 한다면 알파고가 아니다. 그래 이 정도까지는 인간의 영역이다.

초반 부분을 넘어 중반으로 진입했다. 이상한 점은 알파고가 평균 1분에 한 수씩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 이상하다. 그래서인가 기계가 두는 느낌이 사라졌다. 이럴 수가. 알파고2.0을 단순히 바둑의 기술 진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된 것 같다. 백 세모(50번째 수)가 두어진 곳을 보자. 굳이 표현하자면 응수타진인데 이 수는 왜 지금일까 하는 의문 부호가 생길 수밖에 없는 수다. 인간의 눈에는 이런 수가 보이지 않는다. 다음의 한 수가 쉽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묘하게 실마리를 찾는다. 알파고의 백50번째 수는 이세돌 때 보여 준 5선 어깨 짚는 수 만큼이나 파격적이다.

백 84번째 수는 (백1)로 침입한 수다. 기존의 이론과 완전히 다른 침입이다. 인간은 우선 흑8의 곳을 생각한다. 한 칸 차이지만 피아노 건반 하나 보다 훨씬 느낌이 다르다. 이후 3-13까지 집으로 많은 득을 본 것이 알파고가 유리해진 순간이다. 백15,17로 이어진 진행은 흑 모양만 줄이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수순이다.

바둑은 이세돌 5국보다 더 많은 진행(289수 종국)으로 끝났다. 커제도 13분을 남겼고 알파고는 절반만 사용했다. 굳이 나누어보면 이세돌과 1분에 한 수 두던 걸, 1.6수를 두었다.

이세돌 때의 착점 시간이 자유롭다보니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이 두는 모습을 연출했고 너무 매끄러운 진행을 하다 보니 바둑의 매력이라는 패싸움은 생길 기회조차 없었다. 알파고 마스터 버전은 기계의 냄새를 빼고 인간의 냄새로 전환된 착각이 들게 한다. 바둑 내용은 인간의 바둑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잘 둔다.

결과는 1집반이어서 나름 미세한 승부였지만 커제는 시간을 다 쓰기도 전에 패색이 짙어져 아쉬움을 더했다. 이세돌 때의 깜짝 놀랄만한 수도 별로 없고 전반적으로 실력차이를 실감했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완패를 당할 때 느끼는 무기력함이 더했다.

오늘 제1대국 총평을 한다면, '깔끔해졌다’, ‘군더더기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이 흘렀다’이다. 또한 지난해에 비해서 알파고가 더 안정적으로 변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당연한 수도 장고 끝에 두는 모습을 보였는데 올해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등 반응 속도가 훨씬 빨라진 것 같다. 작년에는 알파고가 바둑 두는 것을 보면 ‘좀 지루하다’라는 느낌이었는데, 올해는 일률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빨리 둘 때는 빨리 두고 느리게 둘 때는 느리게 두는 등 아주 다이나믹하게 둬서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알파고가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면 인간의 능력도 향상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바둑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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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마스터 vs 커제 9단: 2국 (2국 영상 유튜브 링크)
(*본 내용은 한국일보 5월 25일자 기사에 실린 내용입니다.)

중국시간 오후 1시 37분, 커제는 자신의 생각시간 47분이 남아 있는 시점에 더 둘 곳이 없었다. 알파고는 50분을 약간 넘겼을 뿐인데. 그만큼 격차는 너무 많이 벌어져 있었고 본인이 항상 이기는 패턴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동료 탕웨이싱 9단이 복기로 위로해주지만 울음을 애써 참을 뿐이다.

처음 흑1,3번째 수를 1국 때 커제가 둔 것을 그대로 사용한 알파고. 커제는 의외라는 듯 살짝웃었다. 이후 바둑은 일사천리. 커제를 완전히 놀라게 한 수가 등장한다.

초반 (23-25) 알파고의 예술적인 한 수
흑1의 응수타진은 사석작전을 하겠다는 뜻. 하지만 우리가 아는 사석작전과는 달랐다. 1국 때 보여 준 백84수의 한 칸 차이와는 또 다른 흑3의 한 칸. 예술적인 느낌마저 든다. 확실히 이 수를 당한 커제는 흔들렸고 작전을 바꿨다. 복잡한 난전으로...

중반 (56-58) 커제 흔들다.
바둑은 복잡해졌다. 커제의 의도에 순순히 복잡한 바둑을 따라 두는 알파고를 보며 과연 1국의 알파고 버전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여하튼 백1,3 커제 바둑의 진수인 행마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젠 디테일이 승부가 되었다. 이세돌은 인공지능의 약점이 디테일 한 부분일지 모른다 라고 했다.

종반 (119) 처음봤다. 알파고 신의 한수.
흑119 말이 필요 없는 한 수다. 이 한방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그동안 예측하기 힘든 수를 많이 봤지만 이 수는 인간도 시간이 많았다면 봤을 것이다. 우린 이런 수를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묘수’다.

커제는 초반 알파고의 25번째 수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노선을 복잡하게 만들어 이세돌의 4국 신의한수를 노렸다. 만약 커제가 오늘119의 수를 두었다면 커제도 신의한수 흑119가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1국은 알파고의 아름다운 바둑을 보여 준 하루라면 2국은 압도적인 바둑을 보여준 하루로 기록될 것 같다.

                      



작성자 : 김성룡 9단 (2016년 알파고 vs 이세돌 대국 공식 해설가) https://s7.postimg.org/7s00eg1ln/image.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