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정말, 뭐라도 좋으니 하고 싶다”
아이가 두 살이 되니 이런저런 다른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를 먹이고 재우느라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밥은 늘 국에 말아 후루룩 먹어야 하며 늘 토막잠을 자야 하는 아기 엄마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이전보다 적응이 되어 여유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육아 스트레스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그렇게 육아가 아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시작한 것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었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사로 일했던 경험과 엄마로서 느끼는 마음을 여과 없이 써 내려간 글에 조금씩 다른 엄마들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가며 그렇게 그로잉맘 이라는 브랜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갈증이 올라왔다.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육아를 하는 엄마들과 소통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지만, 엄마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올리는 육아 고민에 대하여 일일이 대답해주는 것은 무리였다. 직접 만나서 상담을 하기엔 시간, 비용, 장소 만만치 않았고 온라인으로 간단하게 대답해주기엔 너무 가볍고 획일적이라 내키지 않았다.
‘엄마들이 육아 고민을 물을 수 있는 곳이 정말 그렇게 없는 걸까?’라는 생각에 열심히 찾아보니 정말 괜찮은 서비스가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내가 만들어볼 수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렸던 그 순간이 바로 창업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심리학만 공부했고 상담사로 살게 될 거라 장담했기에, 막상 창업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건지 막막하기만 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스타트업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꽤 있었지만 이제 막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꼬마를 키우는 엄마 창업가에겐 적당한 시간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보통 저녁시간이나 주말 시간을 할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눈에 들어온 공고가 있었다. 바로 지금의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운영하는 <엄마를 위한 캠퍼스>였다. 엄마를 위한 캠퍼스라니…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학교를 다시 입학하는 기분도 들었고, ‘엄마’라는 단어의 한정이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쓴다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라 참 어색했다. 며칠을 끙끙거리며 고민한 끝에,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한 장의 지원서에 정리할 수 있었고 며칠을 고민하며 수정을 거듭한 끝에 간신히 지원에 성공하게 되었다.
아직도 합격 메일을 받던 날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합격을 했다는 사실도 기뻤지만, 당장 다음 ‘꼭 가야 할 곳’이 생겼다는 설렘이 컸던 것 같다. 옷장을 열고 뭘 입고 외출하면 좋을까 며칠을 심각하게 고민을 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만큼 무언가를 배우며 어디에 소속되고 싶다는 간절함이 내 안에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시작할 때의 설렘과는 달리, 막상 엄마를 위한 캠퍼스가 시작한 후 종강할 때까지의 시간은 정말 머릿속이 시끄럽고 고달픈 시간이었다. 매주 문제 정의, 고객 인터뷰, 서비스 기획, 마케팅, 개발, 투자 등 다양한 주제를 심도 있게 배울 수 있었는데, 내가 가지고 온 아이템은 그때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담금질을 당해야 했다. 어떤 날에는 꼭 해내고 싶다는 강한 동기와 꼭 필요한 아이템이라는 확신이 올라왔고, 또 다른 날에는 쓰고 냉정한 피드백으로 바닥까지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가장 충격적이면서 인상적이었던 시간은 잠재 고객 인터뷰 수업이었다. 캠퍼스에 도착하자마자 우리에게 후드티를 입히고 볼펜을 쥐여주더니 지금 당장 고객을 만나고 오라며 등을 떠밀었다. 어찌나 황당하던지.. 꾸역꾸역 길거리로 나가 우리 서비스의 핵심 타깃이 될 사람을 찾고 대화를 요청하는 시도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이왕 시작한 것, 안 할 수가 없어 용기를 냈는데 그날 들었던 낯선 잠재 고객들로부터의 피드백, 그리고 캠퍼스에서 수업을 받으며 모았던 다양한 설문조사 데이터들은 최근까지도 중요한 인사이트가 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길거리로 나가 누군가를 붙들고 내 사업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용기조차 없다면, 창업은 아예 시작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엄마를 위한 캠퍼스를 통해, 아이를 키우면서 눌러 두었던 우리의 잠재력을 다시 꺼내고 발견할 수 있었다. 단순히 창업이 하고 싶어 캠퍼스에 지원했을 때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의외의 수확이기도 했다.
데모데이를 끝으로 캠퍼스는 끝이 났다. 데모데이가 끝난 후 허무하리만큼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으며 오히려 이제 정말 혼자 출발선에 덩그러니 남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캠퍼스를 하는 동안 나와 같은 마음으로 지원하고 버텨온 동료들이 남아 있었다. 캠퍼스를 졸업한 후 현재 창업 3년 차가 되기까지, 그때 함께 했던 동료들은 같이 창업을 공부하고,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며,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소중한 창업 친구들이 되어 주고 있다. 얼마 전 구글 엄마를 위한 캠퍼스에서 만나 창업을 시작한 여섯 명의 엄마 창업가 이야기를 모아 <육아말고 뭐라도> 라는 책을 만들었다. 처음 책을 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거절했었다. 나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공유하기에 우리 회사는 너무 작았으며, 나는 여전히 매일매일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엄마들처럼 아이를 키우며 없는 시간을 쪼개어 지원서를 쓰고 창업을 준비하던 나의 평범한 시작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힘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보게 되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함을 느끼며 쪼그려 앉아있던 나에게 ‘엄마 창업가’ ‘엄마 대표님’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고, 용기를 내도록 끌어주었던 엄마를 위한 캠퍼스. 오늘도 창업과 육아를 저글링 하는 일상이 벅차게 느껴지지만, 처음 캠퍼스를 시작할 때 느꼈던 설렘과 열정으로 나를 다독여 본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용기의 메시지가 될 수 있길 바라본다.
작성자 : <엄마를 위한 캠퍼스> 2기 졸업생 이다랑 그로잉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