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계속 해왔다면 꼭 기타가 아니더라도 음악으로 전공을 할 생각은 없었나?
임: 더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는데, 내가 좀 겁이 많다. 내가 과연 어떤 실력인지 그때는 몰랐고 성격도 소극적이어서 그냥 일단 공부를 하자라는 생각으로 지금 하는 전공을 선택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음악을 깊게 파고들었어도 나쁘진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 전공도 좋아한다.
김: 성격이 조용하고 내성적인 편이라고 했는데,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고 공연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전세계인들이 누구나 볼 수 있는 세계적인 사이트인 유튜브에 선뜻 올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유튜브에 본인의 영상을 올리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임: 일단 가장 큰 계기는 내가 연주를 잘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유튜브에는 내가 직접 올린 것이 아니라 한국 음악 커뮤니티에 올렸던 게 일종의 스크랩이 되면서 두 달 정도 동안 이곳 저곳에 많이 퍼지고 유튜브에까지 올라가게 된거다.
김: 그럼 유튜브에 본인의 동영상이 올라온걸 보고 깜짝 놀랐겠다.
임: 처음에는 정말 놀랐다. 내가 처음 본 것도 아니고 친구가 영상을 발견하고 나에게 조회수가 장난이 아니라고 알려줬다. 언론을 타기 전이었는데, 굉장히 많은 코멘트들이 남겨져 있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전세계 사람들한테서 이렇게 많은 코멘트를 받는다는게 신기했다.
김: 지금 얘기하는 걸 보면 전혀 내성적인 줄 모르겠다. 말씀도 너무 잘 하고. 자신감이 많이 생긴 것 같은데 유튜브 스타가 되면서 실제 삶이나 성격, 일과 등이 바뀐게 있나?
임: 예전에는 성격이 조금 소극적이고 아이 같은 면이 있었는데 유튜브를 통해 유명해진 이후에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무대에서 연주를 하고 유명해지고 신문에 나고 이런 것 외에도.. 작년 2월에는 유튜브를 통해 유명해진 것이 기회가 되어서 300일 동안 세계일주를 하고 왔다. 그런게 일종의 변화인데, 특히 작년 여행을 통해서 많이 변한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움직이지 않고 뭔가를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많이 느꼈고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자신만의 색깔을 갖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다.. 좋은 표현이다. 여행은 어떻게 가게 되었고 어디어디를 다녀왔나?
임: “무한상상대장정”이라는 이름으로 원래는 대안학교 학생들이 가는 여행이었다. 중고등학생 13명이 300일 동안 전세계를 돌면서 실제 생활을 배워보는게 취지였는데, 그쪽과 연결이 되었다. 원래는 여행의 메인 테마곡을 작곡하는 것 때문에 연락이 왔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작곡도 하고 함께 여행도 하게 되었다. 미국을 비롯하여 파키스탄, 탄자니아, 케냐, 시리아 등 오지에도 갔다. 한국사람들은 많이 없는 곳들이었다.
김: 가서 그곳 삶을 직접 체험한 것인가?
임: 모든 것은 다 학생들에 의해 계획되었다. 이 나라에 가면 무슨 일을 배울 수 있겠다 이런 것들을 토대로.. 예를 들어 유럽 같은 경우 중세미술에 대해 배우고 싶다고 하면 그쪽 테마는 건축 미술이 되는거고, 아프리카 같은 곳은 동물을 배워보고 싶다는 명목 하에 사파리에서 놀고 왔다. 그리고 탄자니아 같은 경우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니까 봉사를 하고 왔다. 노래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김: 이번 여행에서 작곡을 했다고 들었는데, 작곡은 따로 배웠나?
임: 안 배웠다. 내가 영감을 받는다 이런 얘길 할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행하면서 생각한게 많았다. 이건 이렇게 한번 멜로디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들을 실제로 음악으로 만들어서 미션(Mission)이라는 곡을 만들었고 현재 디지털 싱글로도 나와있다.
김: 그럼 여태까지 작곡한 곡은 몇 개나 있나?
임: 자작곡은 하나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클래식 음악을 락 버전, 기타 버전으로 편곡한 것들이 있다. 사계 중 여름, 생일축하곡, 크리스마스 캐롤, 그리고 현재 또 작업하는 곡이 하나 있다.
김: 그럼 학업을 하면서 여행도 하고 곡 작업도 하고 많이 바쁠텐데.. 하루 일과는?
임: 원래 별로 규칙적이진 않다. 어느 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한다. 진짜 이 노래가 꼭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5시간 정도는 금방 간다.
김: 아까 임정현씨 홈페이지를 쭉 보면서 느낀 점이 언론 특히 외국 언론에서 자기 색깔을 잘 유지할 수 있었던건 영어를 잘 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 NYT를 봤는데, 임정현씨는 영어를 잘했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이 서면인터뷰를 진행했다라고 나와있더라. 사실 한국사람들이 영어에 대한 공포감이 있어서 뛰어난 사람들도 외국언론과 인터뷰를 하면 좀 위축이되는 게 사실인데.. 영어를 잘 하니까 자신의 생각을 뚜렷하게 말할 수가 있어서 참 좋다라는 생각을 했다.
임: 나도 그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영어를 하는 것에 대한 보람을 느꼈다.
김: 뉴욕타임즈에서 인터뷰는 서면으로 한 것인가?
임: 그렇다. 사실 이 NYT기사에 대한 비화가 있다. 맨 처음에 NYT 기사로 나온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그 때 당시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가 5백만 정도 될 때였는데, 그 동영상 속 주인공에 대해 미스터리가 증폭된 상태였다. NYT 기자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 시점에 9살짜리 인도네시아계 미국 아이 엄마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그 기자에게 제보를 했다. 결국 그 사람이 진짜인줄 알고 그 기자의 블로그에 기사로 올려졌다. “모자의 주인공. 미스테리가 풀렸다. 그 이름은 알꽁수!” 그 기사를 본 사람들이 나한테 제보를 해줬고.. 그 아이가 불쌍했지만 제대로 알릴건 알려야 할 것 같아서 기자님께 연락했더니 증명을 해달라 하여 이메일로 왔다갔다 하다 기사가 나게 된 거다.
김: Funtwo 라는 아이디로 계속 활동을 계속 하고 있는데 뜻이 무엇인가?
임: Funtwo의 뜻은 부여하기 나름이지만.. 사실 별 뜻이 없다. 99년 인터넷이 막 뜨기 시작할 때, 아이디를 만들어야 했는데 흔한 아이디 말고 이걸 쓰면 아무도 없겠다 싶어서 만들었던걸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다.
김: 지금 와서 보니까 되게 뭔가 느낌이 있는데..
임: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 만약 아이디를 막 jh1984 이런 걸로 했었으면 재미없을 뻔 했다.
김: 그 동안 섰던 무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임: 먼저 비디오크러시가 기억에 남는다. 뉴욕과 한국에서 올해 2월과 3월 두 번 공연했다. 그 전에 2006년 세종문화회관에서 한 가을밤콘서트라고 있었다. 클래식에 맞춰 편곡을 해서 락과 오케스트라가 만나는 콘서트였는데 그 때 출연자가 저랑 맘마미아 뮤지컬의 박해미씨랑 바리톤 김동규씨랑 재일교포 한인작곡가 양방언씨. 이렇게 4명이서 한 편씩 돌아가면서 오케스트라랑 공연을 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이번에 한 유튜브 라이브 무대였다. 유튜브 라이브에서는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라는 기타계의 거장과 함께 깜짝 공연을 했다. 기타를 맨 처음에 잡는 순간부터 최고의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던 그 분과 한 무대에 섰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어떤 생각까지 들었냐하면, 사람은 평생 기회가 3번 온다고 했는데 그걸 한번에 다 써버린 기분이었다. 이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그런데 한편으론 무섭기도 했다. 진짜 내가 죽을 때가 되어서 이런 좋은 일이 생기나 하고.
김: 조 새트리아니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나?
임: 되게 많은 얘기를 했다. 이 분은 나이도 있으시고 실제 유명한 기타리스트들의 스승이기도 해서 그들을 가르칠 때 무엇을 가르쳤나 또 나와 같은 자라나는 기타리스트들에게 하고 싶은 말 등을 물어봤다. 대화할 때 보면 굉장히 가정적이고 여유가 많이 느껴졌다. 그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음악만으로 올라가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히 느껴질 정도로.
김: 혹시 이분도 임정현씨의 동영상을 봤다거나 이런 말은 안하시던가?
임: 그런 얘기는 안했다. 그건 차마 못 물어보겠더라. 그런데 칭찬을 아낌없이 인색하지 않게 잘 해줬다.
김: 이때까지 총 무대경험은 몇 번이나 되는가?
임: 혼자 기타를 치러 올라갔던 것은 다 세보면 50번은 넘을 것 같다.
김: 사실 정식으로 데뷔를 한 것도 아닌데 이런 무대에 서는게 아마추어들한테는 흔하게 제공되는 기회는 아닌 것 같은데.. 실력도 매우 좋지만 운도 좋았던 것 같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시기적으로 잘 만난 것 같다.
김: 얼마 전에 우리 신문에서 IP 세대라는 시리즈를 하나 진행했다. 평범한 사람이지만, 한 가지 다른 생각으로 이렇게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고 소개하는 기획이었는데 임정현씨는 이렇게 되기까지 어떤 점이 남들과 달랐다고 생각을 하는가? 그리고 같은 젊은 세대에게 한마디를 해준다면?
임: 내가 보통 사람들과 뭔가 달려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솔직히 정말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내가 뭔가 달랐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에 자극을 받아서 더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다수를 따라가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라는 노래처럼 젊은 사람들이라면 자기가 진짜 좋아하고 하고 싶은게 뭔지 그걸 먼저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걸 찾으면 비전이라 할까 앞으로 해야할 일이 조금 은 더 잘 보이지 않을까 싶다. 다른 사람들이 다 하니까 이건 내가 안하면 안된다 이런 식으로 하는건 한계가 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걸 찾고, 여기서 뭘 해야 하나, 자기만의 세계로 개척해나가고 거기서 최대한 몸을 피곤하게 움직이고 노력을 한다면 멀리 걱정할 필요도 없이 다음 단계는 다 알아서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김: 진짜 원하는 것을 찾은 임정현씨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임: 한국의 어린 친구들에게 모티브를 많이 줬음 좋겠다. 꿈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졸업후의 계획은 전공인 컴퓨터와 좋아하는 음악을 결합하여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고 싶다.
김: 얘기할수록 정말 순수하시고 열정적이신 분 같다. 오늘 인터뷰 즐거웠다.
임: 나도 좋은 시간이었다.
임정현씨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임정현씨 홈페이지 및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구글코리아 블로그 운영팀